이제는 정의당과 작별인사를 해야할 때. 한 달 뒤면, 정의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상당수의 민주진영 유권자들은 정의당에 투표해 왔다. 그런데 이번 총선 때는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런가? 정의당은 왜 이렇게 심하게 무너져, 앞날조차 보기 힘든 당으로 스러진 것인가? 그들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정의당의 몰락 원인을 생각해 본다.
1998년 금속노조 홈피에서 탄생한 중앙파
정의당의 전신이자, 정치적 기반은 민주노총의 3대 정파 중 하나인 ‘중앙파’이다. 민주노총에는 3개의 정파가 있는데, 국민파, 중앙파 그리고 현장파가 그것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1998년, 지금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누군가가 익명으로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각 정파의 명칭이 유래한다. 이합집산이 잦고, 현재는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반론도 있지만 여전히 언론은 물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해당 분류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어느 정도 비약이 있지만, 이 정파를 요약하자면, 국민파는 진보당, 중앙파는 정의당, 현장파는 노동당이라고 할 수 있다.(최근 진보당 지지 성향이 강한 전국회의가 국민파와 별개의 정파로 나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자세한 정파 싸움을 적을 수 없으므로 여기서는 국민파와 전국회의를 묶어서 설명하겠다) 각 정파에서 가장 많이 지지를 받는 당이 그러하고, 사실 정파의 성격도 비슷한 면이 있다. 우선 권영길 등의 국민파는 내셔널리즘(국민주의)을 강조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을 강조한다 하여 국민파라 이름 붙었다. 이는 민족주의적 성향과 풀뿌리 운동을 지향하는 진보당과 엇비슷하다. 이갑용 등의 현장파는 현장에서의 급진투쟁을 강조하고, 사회주의, 맑스주의 등 급진좌파적 사상을 추구하는데, 이 역시 가장 강한 좌파적 색채를 드러내는 노동당과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중앙파는 인적 구성에서나, 그 투쟁 성격상으로나 정의당과 닮아있다. 단병호, 심상정, 양경규 등이 중심이 된 중앙파는, 상대적 보수파인 국민파와 급진좌파인 현장파의 중도에 위치해있어 그렇게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중앙 권력을 추구한다’라는 의미에서 중앙파로 불린다. 그 이유는 민주노총의 초대 위원장이었던 단병호나 금속노조 중앙권력에서 큰 힘을 행사했던 심상정 등, 중앙파 소속 인원들이 높은 인지도와 스타성을 바탕으로 풀뿌리 단위보다는 중앙정치 권력에서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중앙파, 정치에 나서다: 민주노동당 평등파
이러한 중앙파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만들어진 정파가 민주노동당 內 평등파 세력이다. 민주노동당에 속한 정파는 매우 많고, 이합집산이 잦았기에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딱 두 개의 정파로만 나눠야 한다면 국민파가 중심이 된 자주파와 중앙파가 중심이 된 평등파로 나눌 수 있다. 자주파는 외교적으로 자주통일과 반미투쟁을 강조하며, 평등파는 사회주의 의제에 따라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였다. 둘은 투쟁 방식도 차이가 있었다. 경기동부연합으로 대표되는 자주파는 성남 지역을 중심으로 촘촘한 풀뿌리 조직을 운영했으며, 평등파는 소속 인원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를 바탕으로 활동했다.
중앙파 소속이었던 심상정과 단병호가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비례대표 10번으로 사실상 낙선권이었던 노회찬도 원내에 입성했다. 노회찬은 엄밀히 말해 중앙파 직계는 아니지만 중앙파 출신과 뜻을 함께하며 평등파라는 정파를 구성하였다. 이 평등파라 불리는 이들이 현재 정의당의 가장 직접적인 뿌리이다. ‘노심조’라 불리는 정의당 3대 창당 주역을 비롯해 양경규 의원, 여영국 의원, 김석준 등 대다수의 인물이 민주노총 중앙파를 거쳐 민주노동당 평등파를 통해 정의당으로 유입되었다.
전국구는 이기지만 지역구는 진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민주노동당 스타들이 중앙파 → 평등파 소속이기에, 민주노동당에서 중앙파가 주가 되고 자주파가 여기에 뒤따랐다고 생각할 수 있다.(권영길은 국민파 출신이지만 정파색이 옅었고 때로는 평등파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는데, 2004년 총선 때만 하더라도 자주파와 평등파가 비슷한 세를 구성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평등파가 처지고 자주파가 우세한 구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 당직자 선거에서는 대표(경남연합 문성현), 사무총장(광주전남연합 김선동), 정책위의장(경기동부연합 이용대)에서 모두 자주파가 승리하며 평등파가 비주류로 밀려났다. 2007년 대통령 선거 경선 때에 평등파가 낸 최후의 카드였던 심상정 역시 권영길에 밀려 대선후보로 오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역시나 중앙파에서 평등파로 이어진 이들의 조직력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중앙파 출신 인사들은 민주노총 내에서도 강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선전했지만 기반 조직의 부재로 인해 부진하는 일이 잦았다. 그나마 조직으로 굴러가는 민주노총 내에서는 그것이 부각되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정당 내에서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노회찬, 심상정 인물 개인으로 보면 괜찮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그들의 사당은 아니었고, 결국 하위 사무총장이나 당직자들은 모두 조직에서 결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그들만의 독자적 조직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주파에 밀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자주파는 확연히 달랐다. 김선동은 2006년 당직자 선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인지도가 없는 인물이었다. 광주전남연합의 실질 리더도 아니었고, 당시 경기동부연합이 연정 상대였던 광주전남연합에 지령을 때려서 내보낸 사람이었다. 실제 선거 결과도 52% 대 48%로 가까웠다. 하지만 결국 김선동이 이겼다. 말하자면, 심상정·노회찬 등 정의당의 전신이 되는 평등파는 전국구에서는 높은 인지도로 이겼지만, 지역구에서는 조직력과 뒷심의 부족으로 연달아 패배했고, 이는 정의당까지도 이어지는 근원적 모순의 토대가 되었다.
자주파와 한배를 탈 수 없었던 평등파는 2008년 총선을 24일 앞두고 당을 쪼개고 나가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결과는 참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민주노동당은 호남을 중심으로 엄청난 선전을 거두었지만, 진보신당은 광역의원 지역구 3석을 포함해 겨우 5명만을 당선시키는 참패를 당했다.¹⁾ 지방선거가 조직의 싸움임을 고려하면, 진보신당과 평등파의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통합진보당 합당과 분당, 더 커진 딜레마
진보신당의 총선 연패가 거듭되자,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조승수는 통합진보당과 합당을 결의했다. 통합진보당은 다사다난했고 당은 2012년 부정 경선 논란으로 분당되었다. 노회찬, 심상정을 중심으로, 비례대표 의원 중 서기호, 정진후, 박원석 등이 ‘셀프 제명’되어 당을 깨면서 진보정의당이 창당되었다. 당은 기본적으로 평등파 + 참여계였다. 유시민 장관이 이끄는 참여계 출신 중 상당수가 진보정의당에 입당했다. 진보정의당이 당명을 바꾼 것이 우리가 오늘날 아는 정의당이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역시나 한계를 드러냈다. 사실, 순수 당원 숫자만 보면 참여계가 통합진보당 내 자주파를 압도했다. 그럼에도 당직자 선거나 비례대표 경선에서 참여계는 속절없이 무너졌는데, 그 이유는 참여계가 ‘유권자 중심 모델’을 추구한 반면 자주파는 ‘당원 중심 모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했지만, 사실상 유시민 장관도 자신의 높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바탕으로 중도 유권자들에게 먹힐 정책을 내세웠지만 당원이 중심이 되는 조직력이라는 뒷심에서 부족해 본선에서는 계속 물을 먹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2010년~2012년 사이의 거의 모든 재·보궐선거에서 선전했지만, 국민참여당은 경기도지사 선거와 회심의 결전이었던 김해 을 보궐선거까지 패배하며 민노당 자주파에 비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등파나 참여계 둘 다와 관련이 없었던 영입 인재들은 더했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 정진후, 스타 판사 서기호, 스피커 박원석 등 비례대표로나 경쟁력이 있지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당선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통합진보당의 합당과 분당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국구에서는 인지도로 승부하지만 지역구에서는 조직, 지역 밀착 등 모든 면에서 밀려 계속 패배하는’ 딜레마 자체를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기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에 완패했다. 비례대표 득표, 당선인 수, 출마자 수 등 모든 것이 진보당에 밀렸다.²⁾ 이유는 단순했다.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분당 직후 1%대로 하락했지만, 조직력으로 복구해 냈다. 단순한 말이 아니다. 통진당 당선인 중 김미희가 있다. 이재명 변호사와 함께 성남의료원 투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사람을 중심으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지역에서 막대한 조직력을 토대로 의료원 설립 투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현재 민주연합 비례로 당선된 전종덕도 같이 참여했다.(전종덕은 후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으로도 당선된다) 이를 통해 통합진보당은 지지율 3%대를 회복했고 정의당을 지방선거에서 꺾었다. 이 모든 것은 통합진보당이 자생적 조직을 갖추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만족할 만한 사회운동을 벌이고 지지층을 결속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정의당은 그것을 할 수 없었고, 결국 패배했다.
민주당 2중대를 자처하다: 독자적 투쟁전술 개발의 부재
결국 정의당이 택한 것은 민주당 2중대의 길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 때부터 이미 징조를 보였다. 인천에서 조택상, 배진교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단일화했고, 천호선 대표가 민주당에 러브콜을 보냈다. 7.30 보궐선거 때도 동작구를 포함한 다수의 지역구에서 늦긴 했지만 정의당과 민주당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었다. 2016년 총선 때는, 정의당과 민주당이 더욱 노골적으로 선거연대를 이루었고, 2018년 선거에서는 정의당이 "5번 찍으면 2번이 떨어진다"라는 ‘오비이락’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민주당과의 연계가 강화되었다.
이것을 민주노동당과 같은 전략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차이가 있다. 민주노동당-진보당 계보의 단일화 전략은 침투 그 자체이다. 대단히 공격적이다. 당선권에 있는 의원 지역구에 그 시·도의 모든 조직력을 투입해 민주당 조직을 물량에서 압도하고, 4년 뒤에 자생적 생존이 가능하도록 조직의 씨를 뿌린다. 2011년 재·보궐 선거 때는 단일화로 이겼지만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와 1대 1 대결에서 승리한 김선동이 좋은 예시이며 이번 총선의 노정현도 비슷한 경우이다.(부산과 경남 지역의 모든 진보당 당원들이 연제구로 결집해 난리가 났다)
반면 정의당의 단일화는 순전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단일화에 가깝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가 많았고, 사실 민주당이 경선도 안 하고 양보해 준 지역이 20대 총선 때 많았다. 조직력이 인지도보다 앞서는 지역에서는 정의당 후보가 단일화에서 패배하는 일이 많았다. 2018년 울산 북구 재·보궐선거의 조승수가 좋은 예시.(조직력에서 밀려서 정치신인인 민중당 권오길에 패배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즉 기본적으로 조직을 가지고 하는 단일화가 아니라, 단순히 인지도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우므로 민주당과 빌붙어 선거를 이기려는 전략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기생했다고까지 볼 수 있다. 만약 2016년 총선 때 성산구 단일화가 깨지고, 민주당이 고양시 덕양구 선거구에 강한 후보를 공천했다면 정의당은 지역구 의석 0석이었을 것이다.
즉, 장기적이지 못하고 단기적인 승리만을 위한 연대가 계속된 것이다. 이는 정의당이 독자적인 투쟁 전술을 개발하는 데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냥 민주당에 빌붙어 단일화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으므로, 민주당 2중대를 자처하고 가끔 강한 목소리를 내는 것 이외의 특별한 전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총 내 기반을 확대하거나, 거점이 되는 지역구 조직을 만들거나, 독창적인 지역 밀착형 공약을 개발하는 것 등의 전략이 부재했다. 있었더라도 홍보가 심하게 부족했다. 공중전에 기대다 보니, 지상전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정의당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민주당 의존형 2중대 정당으로 전락하고야 만 것이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 선거에서 정의당은 8.9%라는 작지 않은 득표를 거두었지만, 정작 지역구에서는 모조리 패배했다. 지역구 광역의원은 전라남도의 이보라미 한 명만이 133표 차이로 간신히 당선되었을 뿐, 나머지는 모조리 낙선했다. 울산에서도 민중당이 19개 광역의회 지역구 중 11곳에 공천한 반면 정의당은 겨우 1명밖에 공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독자적으로 어떻게 투쟁해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와야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집착
안타깝게도, 정의당은 현장으로 돌아가 답을 찾는 대신 여의도 문법에 매달렸다.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한때 정의당을 지지했던 입장에서, 진보정당의 의석수가 언제나 부족한 감은 있다. 정의당은 언제나 10% 정도의 지지를 받지만, 의회 300석 중 30석이 아닌 5석 내외만을 받는 데 그친다. 그렇다면, 실제 30석이 되도록 제도를 개선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사고에서 나온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투쟁이었다. 물론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투쟁의 전부였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 때야말로 정의당이 노동과 농민 의제에 있어 독자성을 드러내기 좋은 시기였다. 촛불혁명 정신을 내세우며 더욱 가열하게 민주노총과의 연대 투쟁을 내세워야 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대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 투쟁에 묻혀버린 것이 컸다. 당이 스스로 홍보의 기회를 걷어찬 것이다.
내가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릇이 바뀐다고 해서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려면 재료를 좋은 것을 써야 하고 불의 강도도 조절해야 한다. 정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선거제 논의보다도 결국 선거로 당선된 의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했다. 사실, 의석수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38석의 안철수 국민의당은 한심한 작태만 보여주며 존재감을 스스로 증발시켰지만, 겨우 5석이었던 이정희 체제의 민주노동당은 모든 의제에서 이명박과 맞서 싸우면서 체감상 50석에 가까운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정의당이 그런 것을 하지 못했기에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라 생각된다.
심상정은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은 복잡한 산식을 알 필요가 없다”라는 진보 정치인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망언을 남겼고, 우여곡절 끝에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민주당이 바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정의당의 단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비례대표 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이 역시 정의당의 잘못이 적지 않다.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조국 사태와 같은 여러 국면에서 민주당과 차별되는 진보·혁신적 의제를 내세웠다면 더욱 폭넓은 지지를 받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의석이 6석에서 답보하는 참사는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법에 집착하다 보니 모든 것이 실패한 것.
실로, 정의당의 조직력이 이 총선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지역구 선거에서 대참패했다. 민주당이 문명순이라는 매우 약한 후보를 내보냈음에도 심상정은 40%도 안 되는 낮은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는데, 민주당이 작정하고 공천했다면 심상정이 낙선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영국은 큰 표 차이로 강기윤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단일화 실패만을 탓하기도 어려운 것이, 과거 권영길은 이 지역에서 두 차례나 민주당과의 단일화에 실패했음에도 큰 차이로 2번이나 당선되었다. 나머지 후보들은 볼 것도 없다. 이정미, 윤소하 등 주요 후보들이 모두 10%대 득표율로 낙선했고 추혜선은 5%도 받지 못했다. 공중전에 집착하다 보니 지상전을 놓친 패착의 참담한 결과물이었다.
민주당을 향한 왜곡된 복수심
정의당의 처절한 실패는 민주당에 대한 왜곡된 복수심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것도 웃긴 소리다. 애초에 진보정당에서 민주당과의 연대를 외쳤던 것은 평등파가 아닌 자주파였기 때문이다. 기실, 민주당과의 연대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이었고, 제일 회의적이었던 것은 양경규, 심상정 등의 평등파였던 것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선거에서 밀릴 것 같으니까 민주당에 기생하더니, 민주당이 한번 잘못했다고 바로 민주당을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가다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21대 국회에 초선으로 입성한 정의당의 류호정(왼쪽), 장혜영 비례대표 당선인의 국회 본청 앞 기념 촬영. 2020년 5월 20일.
아무튼 그래서 사상 최악의 비례대표 당선인 명단과 함께 정의당은 민주당 하나만을 공격하는 정당으로 거듭났다. 박원순 사태 정국 때 패륜적인 망언을 했다. 물론 박원순이 성추행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친구이자 동지였고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를 추도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이다. 동지들의 추모 자체를 비난하는 정의당의 행태는 한국 정서에서 선을 넘은 것이었다. 그래 놓고서는 자신들도 대표가 성추행에 걸려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에 무공천을 결정하는 촌극을 빚었다. 그것도 피해자는 자당 국회의원이었다. 류호정 의원의 무거움이라고는 없는 행보는 덤이었다.
이는 최악의 자충수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정의당은 홀로서기 자체가 불가능한 정당이었기에 전략적으로 민주당에 기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민주당과 선을 긋는다면, 누가 정의당에 표를 주겠는가? 그런 질문이 정의당 내부에서도 속출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 대표는 확고한 당내 좌파였다. 좌익 자강론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김종철이 무너지자, 조성주와 류호정 등은 ‘세 번째 권력’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면서 당의 우경화를 주장했다. 당이 너무 좌파여서 표를 못 받는다고, 그냥 제3의 길을 추구해서 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중도층의 표를 받자고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민기 등의 당내 좌파 세력(전환)은 김종철보다도 더 좌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정미·심상정 등의 당권파는 생각이 없었다. ‘민주당 기생정당 이후의 정의당’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차이가 났기에 정의당이 분열된 것도 당연했다.
결국 어느 길로 갈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민주당을 비난하는 행보는 최악의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2022년 대선에서 정의당의 전략은 "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최악의 망언으로 대표된다. 심상정은 초라했다. 노동자들은 이재명을 선택했다. 울산 북구에서 정의당의 표 가르기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 1위를 했다. 심상정은 울산 북구, 울산 동구, 성산구 등 ‘노동자 벨트’ 중 어느 한 곳에서도 5%를 넘지 못했다. 뒤이은 지방선거 결과는 더욱 비참했다. 심상정의 조직 산하였던 고양시 의원 전원이 낙선했고 성산구의 노창섭 시의원도 처참하게 낙선했다. 정의당의 지역구 조직은 진보당보다도 못하게 되었고 지역구 의원은 광역의원 0명, 기초의원 6명에 불과했다. 당은 이제 망할 일만이 남게 된 셈이었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정의당이 저지른 최악의 패착은 단연 2023년 두 차례에 걸친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정의당 지지자들이 많았다. 정의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의 6석은 정의당이 결정할 일이지 민주당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의당은 독자적인 정당이고 그들만의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정의당은 제3당이고 제3당은 민주당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보도 화면. 2023년 2월 12일.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이는 심각한 배신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왜인가? 정의당은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 혹은 현재의 진보당과 달리, 역대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홀로서기’를 해본 적이 없다. 오로지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민비정’ 교차투표를 통해 연명해 왔을 뿐이다. 21대 총선의 목포, 연수 을, 안양 동안 을 선거 결과가 보여주다시피 정의당이 민주당과 달리 독자적 세력으로 선거에 나선다면 결과가 어떤지는 명확했다. 정의당은 독자적 정당이라기에는 너무 자기 세력이 부족했고, 그래서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에 기생해 오는 방식으로 당세를 유지해 왔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세력과 조직을 외주하고 자신들은 꽃노래 부른 것에 불과하다.
이런 정당이었던 정의당이, 세부적인 노동 의제나 기타 의제도 아니고 당의 명운이 걸린 체포동의안 가결에 동조한 것은 아무리 봐도 지지자들의 표심을 배반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 지지자이면서 정의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의 수는 절대다수였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9% 가량을 득표했다. 2022년 대선에서 심상정은 2%를 득표했다. 단순 계산만 해봐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비례표의 최소 6~70% 가량은 민주당 지지자이면서 정의당 지지자인 사람들이 준 표이다. 말하자면, 자기 고객들의 니즈조차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정당이,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어떤 가게가 판매 전략을 바꾸고 배짱 장사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고객들이 가게에 발을 끊는 것도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싫었다면, 위에서 계속 강조했다시피, 정의당은 그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정당임을 ― 즉 독자적 의제와 조직력을 갖춘 조직임을 ― 명확히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2022년 대선 때 심상정 선대위에 참여한 외부 인사 7명 중 민주노총 간부 출신은 1인에 불과했다. 이는 민주노총 위원장인 양경수가 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한 것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정의당은 기존에 자신들을 지지한 조직조차 배반했다. 대표적으로 SPC 회장 허영인의 노조 탈퇴 강압 의혹이 총선 도중 의제화되었는데도, 녹색정의당은 선거 기간 내내 기후와 환경을 외쳤을 뿐 집중적인 구속 요구 시위나 쟁점화를 시도하지 않았다.(혹은 시도했더라도 홍보가 심각하게 부족했다)
2023년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정의당을 지지하는 위원장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정의당의 텃밭인 공공운수노조에서조차 평등의길(정의당 지지 그룹) 후보가 낙마하고 강성 좌파 성향인 공공운수활동모임 소속 후보가 전국회의(진보당 지지 그룹)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 모든 것은 정의당이 스스로의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기는커녕 있는 세력조차 방치와 무관심으로 붕괴를 자초했음을 보여준다.
최후의 발버둥: 22대 총선
그 결과,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회생을 위한 끝없는 발버둥을 했음에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모든 것이 늦어버렸고, 둘째로 선거 도중에도 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준우 비대위는 당내 좌파 자강파 그룹인 ‘전환’의 출신으로 이정미 등의 인천연합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외부인사에 가까웠던 김준우는 무너지는 녹색정의당 조직을 회복할 힘이 없었고, 최악의 적폐였던 심상정 개인을 축출할 힘도 없었다. 더구나 총선 후보자들을 비교적 좌파적이고 노동 관련된 사람으로 선출하는 등, 제대로 된 자강론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대파가 아닌 기후위기"라던가 "정권심판을 한다고 삶이 달라지나" 등의 정리되지 않은 워딩이 튀어나오며 민주당 지지층의 마지막 남은 교차투표 의지까지 불살라버렸다.
민주노총 내에서도 녹색정의당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발버둥이 있었다.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 등을 중심으로 민주연합과 연대한 진보당을 지지 정당에서 배제하고, 녹색정의당과 노동당만을 지지 정당에 포함시키는 안건이 올라왔다. 더 나아가 이들은 진보당을 지지하는 국민파 출신의 의견그룹(다만 김명환 위원장 체제 이후로는 국민파와 갈라지고 있는) 양경수 위원장 주도 전국회의에 반기를 들고자 했다. 그러나 회계공시 거부안, 한반도 비핵화 등 이들이 낸 안건이 모두 부결되었고, 녹색정의당과 노동당만을 지지 정당으로 포함시키자는 공공의 안건 역시 부결되었다. 격노한 공공운수 소속 노조원들이 피켓을 버리고 대회장을 이탈하는 ‘대대런’을 일으키면서 이들에 대한 여론만 나빠졌다. 총선 이후로도 이들은 녹색정의당과 노동당만을 진보정당으로 규정하자는 안건을 냈으나 찬성 20%대에 그치며 세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총선 결과는 비참했다. 심상정만이 겨우 15%를 넘겼을 뿐, 나머지는 전액 보전에도 모두 실패했다. 여영국은 10%도 받지 못했고 그 외 나머지 후보들은 볼 것도 없었다. 울산에서는 단 한 명도 공천하지 못했고, 진보당 후보와 맞붙은 목포, 경산에서도 모두 진보당 후보에 득표율이 밀렸다. 경산의 경우 진보당 후보와 정의당 후보 체급이 컸고 조직력도 정의당 쪽이 더 좋은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출구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제는 정의당에 전혀 교차투표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정의당은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결론: 그들만의 기반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정의당의 실패 요인은 무엇인가? 정의당이 무너진 것은 2022년 대선 이후의 여러 패착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90년대 민주노총의 중앙파에서 민주노동당 평등파, 진보신당, 진보정의당, 정의당으로 내려온 일련의 정파가 가지고 있는, 공중전에서는 능하지만, 지상전은 못 하는 근원적 한계점이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다. 정의당의 몰락은 이미 그들의 출신에서 예견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들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당은 언제든지 스스로의 조직력을 확충, 확장시킬 여유가 있었다. 2016년 총선 이후가 대표적으로 그랬고, 2020년 총선 이후로도 마음만 먹었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지지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고 실제로 성공한 사례도 지역 단위로는 제법 존재했다. 목포나 인천, 성산 등이 그랬다. 그러나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연합에 안온한 나머지, 이러한 조직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2022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힘들게 쌓아 올린 각 지역의 조직마저 붕괴되며 2024년 총선에서의 승리 가능성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정의당이 지속적으로 민주당의 편을 들어주면서, 노동 의제 등 일부 의제에서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면, 독자성은 잃었을지언정 당으로서 존속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법에 대한 집착, 2020년 총선 이후 민주당에 대한 과도한 복수심 등이 겹친 나머지, 아직 지역 조직이 다 완성된 상태도, 스스로의 독자성을 대중에게 충분히 드러낸 상태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섣불리 자신들의 최대 지지 기반이었던 민주당-정의당 동시 지지자들을 자극하는 패착을 저질렀다.
때문에 정의당은 홀로서기를 할 역량도 갖추지 못한 채 제3지대라는 허허벌판에 내던져졌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당을 탈주하거나 얼어 죽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22대 총선에서 정의당의 ‘폭망’은, 스스로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당을 운영한 심상정과 류·장·조의 맹동적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2014년 내란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졌음에도 10년간 피땀 흘리며 조직을 재건해 이번 총선에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한 진보당과 더욱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향후 모든 제3지대 정당이 정의당의 사례를 보고 배우길 바란다.
이제 정의당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당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없다. 국민의힘에서 정의당을 좋게 봐주는 것도 아니요 개혁신당에서도 정의당을 흡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정의당은 이제 망한 것이다. 40억이 넘는 빚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 정의당은 진보당과의 대화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굳이 합당 협의일 필요는 없다.
진보당이 운영하는 길거리 채무상담소 '가계부채119센터'. 진보당 기관지 너머.
각주
¹⁾ 5회 지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선거 결과. 울산시장 김창현 29.3% : 노옥희 9.5% / 기초단체장 3명 : 0명 / 광역의원 24명 : 3명 / 기초의원 115명 : 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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