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4월 20일),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경제 논객 박 씨(31)의 전기통신기본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이 나왔다. 지난 1월 10일 구속됐던 박 씨는 100여 일 만인 오늘 저녁에야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게 됐다.
박 씨는 2007년 10월부터 체포되기 전까지 300여 편의 글을 다음 아고라에 게재했는데, 2008년 8월 25일 조선일보가 찬성했던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 시도를 반대하는 글을 쓰면서 리먼의 파산을 예측했던 것이 들어맞아 인터넷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초에는 환율 1400원 돌파를 예견했고, 실제로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한 것은 그 달 말이었다. 이외에도 각종 경제지표의 변동을 정확히 예견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의 글은 다음 아고라에서 누적 조회수 730만, 댓글 33,000개 등을 기록했다.
지난 11월 11일, 정보 당국은 알려진 바 없는 미네르바의 신상에 대해 '50대 초반의 전직 증권맨'이라는 거짓 정보를 신문 기자와의 사석에서 고의로 흘려 오보 소동을 일으켰다. 이틀 후인 13일 박 씨는 절필을 선언하며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으니 글쓰기를 멈추겠다. 경제 예측을 하는 것을 불법 사유라고 하다니, ‘조국’과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애국심을 갖고 공동체 의식 속에 살아온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기만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라는 글을 남겼다.
해를 넘긴 1월 7일,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산하에 '허위사실 유포 전담반'을 급히 신설해 박 씨를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 위반으로 긴급 체포했다. 체포 이후 당국은 전문대 졸 30대 무직 남성이라는 그의 실제 신상을 강조했고 언론들은 이를 '잡고 보니...'라는 뉘앙스로 보도했다. 그가 쓴 글들의 신뢰성을 깎아내리고 도주의 우려를 꾸며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모멸적인 태도로 그의 개인정보를 활용한 것이다. 사건을 지휘한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김주선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은 박 씨가 기소된 지 일주일 만에 법무부 기획조정실 실장과 춘천지검 강릉지청장으로 승진했다.
검찰이 "허위사실을 주장한 박 씨의 글로 인해 공익이 훼손되고 20억 달러의 방어비용이 발생했다"라는 이유로 징역 1년 6월을 구형하며 문제 삼은 글은 박 씨가 쓴 300여 편의 글 중 단 2개였다. 이 중 2008년 7월에 쓰인 '정부 환전 업무 중단'과 관련된 글은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 쓰인 글이라 공익을 훼손했다는 검찰의 주장과 별 연관이 없다. 결국 12월 29일 쓰인 '대정부 긴급공문 발송-1보'라는 글이 핵심으로 남는데, 글의 내용처럼 기획재정부에서 공문을 보내지는 않았으나 전화를 통해 금융기관에 달러 매수를 줄일 것을 요청한 사실 자체는 있었으며, 박 씨는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받고 사과 후 스스로 글을 삭제하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박 씨가 써온 글의 극히 일부분인 이 한 대목을 트집 잡았다.
또한 검찰은 표적수사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한 시점을 문제의 글이 쓰였던 12월 29일 이후라고 발표했으나,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이 다음 측으로부터 그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 주요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것은 한참 전인 12월 5일이었다. 기재부는 검찰로부터 이를 넘겨받아 '미네르바 주요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하였으며, 바로 이 문건을 검찰이 되받아 그를 기소할 때의 핵심 자료로 사용하였다. 사법 처분의 이유가 됐다던 글이 쓰이기 전부터, 인터넷에 반정부-반MB 성향의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주시하고 추적해 핀 포인트 구속 기소를 한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그가 체포된 이후 보도에서 그의 실명, 얼굴, 주민등록번호 등을 노출했다. 조선일보가 1월 9일자 1면과 5면에서 가장 먼저 그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는 명백히 조직화·대형화된 권력들의 개인에 대한 정보권 침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오늘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박 씨가 문제의 글을 게시할 당시 그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과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온 박 씨는 “개인의 권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고난의 과정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 박 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3차장은 선고 이후 "증거의 취사선택과 사실관계에 대한 오인 또는 허위 사실의 인식과 공공 침해 목적에 대한 법리 오해로 수긍할 수 없다"라며 즉시 항소할 계획을 밝혔다.
민주당은 판결 직후 낸 논평에서 "이명박 정권의 막무가내식 표현의 자유 침해에 경종을 울리는 법원의 공정한 판단"이라며 "그러나 지금도 정권 차원의 언론탄압과 표현의 자유 침해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민주노동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평범한 인터넷 논객을 하루아침에 공익을 해치는 죄인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한 검찰은 반성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그가 구속될 때와는 달리 아무런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 AFP, 로이터, 포브스 등 외신들은 언론과 인터넷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독재 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라는 논조로 보도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검찰과 그 상위의 권력은 "인터넷에 함부로 글 쓰지 말라"라는 메시지로 대중을 길들이겠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박 씨의 구속 이후 다음 아고라는 크게 위축되었으며, 다음 메인 페이지에서도 접근하기 어렵게끔 치워졌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 일부 누리꾼들은 검열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사이트로 '사이버 망명'을 시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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