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거가 끝났다. 기대했던 200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범진보 189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어냈다. 그만하면 훌륭한 것이다. 끝까지 열심히 달려온 민주당과 진보당, 새진보연합 야권연대의 후보자들, 조국혁신당과 대구·경북의 친야 무소속 후보자들, 그들을 묵묵히 도운 여러 당직자들과 무엇보다 투표로서 189석을 이루어낸 민주시민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아쉬운 부분도 있고 속상한 부분도 있지만 이제 22대 총선은 과거의 일이다. 이 189석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이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해야 할지를 분석해야 할 시간이다.
I. 압승, 현상 유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024 신년 기자회견. 2024년 1월 31일.
한국 헌정사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150석 이상의 의석을 총선에서 확보한 적이 없었다. 사실상 ‘예비 대통령’이라 불리던 2000년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도 과반 의석에 약간 미달하는 의석만을 받았다. 그런 이회창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지지율이 60%를 넘나들었다. 그에 비하면 이재명 대표가 거둔 승리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200석을 바라고서 190석을 얻었기에 패배처럼 보이지만, 189석 그 자체만을 따로 놓고 보면 헌정사에서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재명은 2000년의 이회창이나 2006년의 박근혜 등이 누리던 절대적인 야당 당수의 위상 혹은 그 이상을 누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 윤석열은 단 한순간에도 여당이 과반수는커녕 1당도 못 해본 대통령이 되었다. 고립무원 노무현조차 1년여간은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불과 20여 년 만에 정확히 뒤바뀐 정치 구도를 보게 되었다. 전 국민의 지탄 대상이며 당정 갈등을 겪는 고립된 대통령과, 전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야당의 당 대표. 2000년대 노무현과 박근혜/이명박의 구도가 현재 윤석열과 이재명의 구도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정치적 싸움을 할 만큼 당의 기반과 능력, 체급이 전반적으로 커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드는 이유는 결국 200석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189석은 180석보다 9석 많지만, 200석이 되지 않는다면 그 정치적인 의미는 180석과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100석을 넘음에 따라 개혁신당 등 여타 제3지대 세력과의 공조도 어려워졌다(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그만큼 이준석의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했다고 볼만한 부분이다). 즉, 우리는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거부권을 날리고, 특검을 뒤집어도 무엇을 하기가 어려운 의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7공화국 개헌은 물론 거부권 무효화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는 ‘현상 유지’를 한 것에 불과하다. 현상 유지도 잘한 것이지만, 현재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현상 유지보다 더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했기에 크게 아쉬움이 남는다.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표결하는 국회 본회의. 20대 국회 당시 민주당의 의석 수는 123석에 불과했지만, 이 탄핵 소추안은 찬성 234표로 가결되었다. 2016년 12월 9일.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국민의힘이 110석을 간신히 넘기 때문에 국민의힘 내에서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미약하게나마 있다. 상당히 가까운 격차로 당선된 의원 명단을 보면 나경원, 안철수, 김재섭, 김용태 등 현재 윤석열 대통령과 사이가 껄끄러운 성향의 인사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단 11표만 이쪽으로 넘어오더라도 윤석열 정권이 끝장이라는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민주당 자체의 힘은 줄어들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의힘 내 '소신파'의 힘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상당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고 통제불능의 윤석열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중진 비윤 의원과, 혈기 넘치는 자칭 개혁보수 청년파 의원이 윤석열을 압박하는 강도는 이전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당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마치 12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이 오히려 100석을 넘었기 때문에 친 탄핵파와 반 탄핵파로 분열되어 3년간 딴집살이를 했다시피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 유지'의 상황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압도적인 여당의 승리도, 압도적인 야당의 승리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여당에게 유리할지 야당에게 유리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II. 이재명 대표의 검증된 정치력
이번 총선의 승자는 조국도 한동훈도 아닌 이재명 대표이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이 결국 3위를 차지한 반면, 민주당은 기존 예상을 뛰어넘는 14석을 확보했다. 또한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이것을 여러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천 처리이다. 지금의 범야권은 189석이지만 이전의 민주당 180석과는 다르다. 이전의 180석을 보자면, 김종민이나 양향자, 이원욱 같이 현재 기준으로 보자면 국민의힘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40%에 달하는 현역 교체를 통해 이인영, 우원식 등 당을 이끌어나갈 최소한의 어르신만을 제외하고는 혈기왕성한 반검찰 진보파 의원이 원내에 입성시켰다. 즉, 똘똘한 189석이다. 180석을 가지고도 개혁을 못한 것은 친검찰 가결파 40여 명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189석은 확고한 반윤·반검찰·친개혁·친진보로 구성되어 있다. 기대를 해볼 만하다.
이러한 교체를 이루어냈음에도 거의 잡음이 없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김영주 등 일부가 소란을 피웠지만, 사실 2016년이나 2012년의 공천 파동에 비하면 그 규모는 아주 미약했다. 노웅래의 통 큰 양보로 선거 기간을 2달 앞두고 공천 잡음은 조기 종식되었다. 이재명의 타협과 원칙이 그만큼 빛을 발한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이라면 으레 있는 구세력과의 갈등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노무현은 김대중과, 문재인은 손학규·정동영과 불가피하게 갈등했다. 반면 이재명은 일부 극문파 의원과 갈등하긴 했지만, 문재인과 화목한 모습을 선거 내내 보여주었고, 윤건영이나 한병도, 진성준, 곽상언 의원 등 친노-친문-친명 가교를 유지하면서 구세력과 신세력의 세대교체를 원만히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탑 다운 방식이 아니라 바텀 업 당식이었던 것도 칭찬하고 싶다. 이번 총선은 전략공천이 비교적 적고, 경선을 통해 의원을 교체한 경우가 더 많았다. 기존 한국 정당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민주적 당원 민심 반영이라 할만하다.
두 번째는 151석 전략이다. 결과적으로는 이재명 말대로 선거 막판에는 151석 정도가 민주당의 실제 의석 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25석 정도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접전지역이었음을 감안하면 말이다. 물론 여론조사 상으로는 200석이 유력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 안일하게 선거를 치를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재명의 151석 전략은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선거를 하면 여권 지지층은 결집하고, 야권 지지층은 어차피 이길 선거 안 나가도 이긴다는 식으로 결집력이 약화되어 여당이 역전승을 거둘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것은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끝까지 박빙이니까 투표를 해달라는 읍소였고, 여권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이렇게 불리하니 섣불리 결집할 필요 없다는 메시지였다. 동시에 나 하나가 투표를 하면 총선 판세를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것은 어느 정도의 공포 마케팅이었다. 유시민의 말대로 야권 지지자들은 여당이 151석을 넘기면 나라가 진짜로 큰일이 나버릴 것이라는 미약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이재명은 이것을 이용해 내가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당이 151석을 확보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한 표 한 표가 절박함을 지지자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이것은 절망이나 겁박의 용어 없이도 유권자들에게 읍소하는 전략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나름대로의 품격이 있는 것이다. 한동훈과 비교하면 더더욱. 종북좌파 세력이니 범죄자의 집권이니 저급한 용어를 사용하며 유권자들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하는 워딩을 사용한 한동훈에 비하면, 이재명의 151석은 읍소 전략으로서 워딩이 매우 정제되어 있고, 공포와 동시에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선거전략이라 할만하다.
제6회 지선 당시 재선에 도전하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선거 포스터. 이재명 트위터.
더욱 고평가 하고 싶은 것은 이재명의 성장이다. 나는 성남시장 시절의 이재명을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그때 이재명은 좋은 행정가였지만 좋은 정치가는 아니었다. 문재인에 대한 그의 공격은 과도했고 극성 지지 세력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경기도지사 당선 소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조용하지만 자신의 정치력을 계속 갈고닦았고,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여러 재판을 거치면서 현재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 그는 이전과 같이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어휘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이제 깔끔하고, 품격 있는 워딩을 사용하면서도 그가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정치인이 되었다. 이런 점을 보면, 결국 인간은 계속 성장하는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는 중학교 이래 정신세계가 전혀 성숙하지 않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50을 넘어서도 수행을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이상적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III. 한동훈의 패배
이번 선거 최악의 패배자는 한동훈이다. 한동훈이 왜 패배했는지에 대해 예의상 간략하게 다루고 넘어가자. 우선, 한동훈은 선거를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치러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데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선거라면 오죽하겠는가. 김종인이나 박지원, 이해찬 등이 구태 소리를 들어도 결국 계속 기용되는 것은 그들이 선거를 수십 번씩 치러본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조정식, 이기상, 한석원, 김동욱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1타, 2타씩 하는 대단한 강사인 건 그 사람들이 그만큼 오래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구태랍시고 잘 생기지도 않은 20대 교생 선생을 대체 강사로 불러오면 수능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는 것이고 선거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어떻든 이미지가 어떻든 결국 선거는 전략과 자금의 싸움이고 그것을 감안하면 한동훈을 부르면 안 됐다.
한동훈의 지원 유세는 역설적이게도 이기적이었다. 2024년 3월 22일.
이런 ‘정치 초보’ 한동훈의 선거 전략은 긍정적으로 말하면 다사다난했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총체적 난국, 우당탕탕 난장판이었다.
첫째, 여당의 대표가 이렇게 정부 여당과 싸우면 안 된다. 정동영도 노무현이랑 싸워서 그 이후 정치 인생이 힘들었다. 당시 정부여당 내에서 노무현이 죽일 놈 취급받았는데도 그랬는데 현재 이철규, 김은혜, 주진우 등 '찐윤'들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내에서 대통령과 파워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이상한 발상이었다. 한동훈 스스로의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윤석열의 부하가 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럴 거였으면 이준석과 함께 하거나, 스스로 지역구에 출마했어야지 여당 대표를 맡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여당도 분열시키고, 자신의 정치 인생도 험난하게 한 최악의 행동이었다.
둘째, 스스로도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네거티브 없는 선거를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쓰레기, 범죄자 등 험한 말이란 험한 말은 다 나왔다. 처음에는 깨끗한 사람만 공천했다고 큰소리치다가 도태우, 장예찬 막말 논란이 나오자 공천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판세 분석이 달라졌다. 골든크로스로 민주당을 이긴다고 했다가, 200석만큼은 내어주지 말자고 했다가, 또 150석 넘긴다는 식으로 중구난방의 워딩을 사용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스스로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책임을 진다고 했으면서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대 모든 당 대표들은 원로가 아닌 이상 총선에 출마했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비례대표라도 출마했어야 했다. 정치인생을 걸겠다면서 출마도 안 하는 일관되지 못한 모습은 여당 지지자들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이렇게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였기에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김포 편입을 말하다가, 그다음에는 여의도 세종 이전을 말했고, 마지막에는 이·조 심판론을 꺼내들었다. 정치에서 메시지는 일관되고 분명해야 한다. 한데 한동훈은 갈피를 못 잡는 변덕스러운 태도로 국민의힘이라는 조직의 목표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셋째, 자아도취에 취해 진지하지 못한 태도로 선거에 임했다. 총선은 대선이 아니다. 한동훈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다. 자신이 아닌 후보를 띄워야 했다. 그러나 유세 중 항상 센터에 서고, 그것도 모자라 까치발을 들고 셀카를 찍는 등 온갖 자아도취성 기행은 다하면서 후보는 뒷전이고 자기 자랑만 열심인 모습을 보였다. 후보자들이 한동훈의 위세에 밀려버리는 건 둘째 치고, 한동훈이 그렇게 잘난 인물인지도 의문일뿐더러 진짜 잘났더라도 그런 식으로 자만하면 안 된다. 정치뿐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처신이 잘못되었다. 결국 그의 비호감도는 하늘을 뚫었고, 한동훈에 대한 전 세대의 혐오는 극에 달해 안 그래도 정권심판 여론으로 힘든 여당 후보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힘들게 했다.
총평을 내리자면, 그는 황교안보다도 못했다. 이런 당 대표를 가지고도 108석이나 먹은 국민의힘이 정말 대단하다고 하겠다.
IV. 레거시 미디어를 대체한 뉴미디어
이번 총선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미디어 구도의 교체이다. 한국 사회가 한나라당과 보수주의에 의해 지배되었던 2010년대 이전에 지배적인 미디어 형식은 종이로 된 신문과 TV에서 나오는 뉴스였다. 그때 국민은 언제나 신문을 읽고, TV를 보는 존재였다. 읽고, 본다는 것은 수동적인 의미이다. 2000~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발달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부상은 군중을 언론에 의해 휘둘리는 정체가 아닌 스스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하고 공유하는 능동적 주체로 도약시켰다. 그럼에도 2010년대까지는 여전히 조중동으로 표상되는 여러 보수언론이 주류였고, 나꼼수와 같은 뉴미디어는 언제나 비주류의 영역에 남아있었다.
이러한 구도가 뒤집힌 것은 역설적으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올드미디어의 여러 '무리수'였다. 윤석열 정권은 KBS에 이어 YTN까지 통제를 시도했고, 태영건설을 통해 SBS의 통제권을 확보했으며, 유일한 민주언론으로 남게 된 MBC를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 언론 역시 조중동 등 보수언론뿐 아니라 한경오 등 자칭 진보언론마저 민주당 비난의 대열에 참여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올드미디어는 다시금 ‘친윤 반민주’의 구도로 재편성되었다. TBS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어준 퇴출은 오세훈 시장과 TBS의 기회주의자들이 벌인 참사였다.
그러나 김어준을 비롯한 뉴미디어의 주자들은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겸공과 여론조사 꽃으로 대표되는 여러 콘텐츠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친민주 유권자 사이에서 각광을 받았다.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이제 어지간한 종편 채널보다도 유튜브 조회수에서 앞서고 있고, 민주당과 진보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기존 올드미디어보다 김어준과의 인터뷰를 더 많이 가졌다. 이것은 민주당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민주당 지지층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주면서 여론 자체를 바꾸는 기능을 하였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동안, 뉴미디어를 표방하는 김어준이 유권자 다수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미디어 구도 교체의 원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김어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장남천동'의 오창석, 이동형, 박시영 그리고 민주진보진영의 영원한 총아 유시민 모두 현재의 승리에 나름대로의 지분이 있다고 봐야 한다.
'MBCNEWS' 유튜브 채널과 429만의 구독자들. 2024년 4월 12일.
레거시 미디어의 뉴미디어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MBC는 과거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2%밖에 나오지 않으며 폐국 위기까지 갔다. MBC 정상화 이후에도 SBS나 KBS에 비해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뒤집은 것은 유튜브였다. MBC는 TV 시청률보다도 유튜브에서 더욱 두각을 드러내는데, 구독자 수는 무려 400만 명이 넘고 월 조회수는 SBS, KBS를 비롯한 모든 언론을 압도하며 TV조선과의 조회수 차이는 50배에 달한다. 이러한 모든 정황은 기존 신문과 TV로 대표되는 올드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결국 유튜브와 인터넷 신문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에 대한 민주진보 진영 및 중도 유권자의 주목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미디어 역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뉴미디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시청자와 뉴스 제공자의 쌍방 수평적 소통이 가능하고,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이슈를 더욱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뉴미디어의 승리는 결국 우리가 뜻하지는 않았지만 언론매체의 진정한 민주화를 반이나마 달성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과할 정도로 안심해서도 안될 것이다. 우파 유튜브로 대표되는 또 다른 뉴미디어는 그 전파성과 주목성을 이용해 선동과 선전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또한 기존 올드미디어의 정상화 역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여전히 올드미디어는 일정 부분의 영향력이 존재하며, 뉴미디어의 한계를 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뉴미디어의 승리에 주목하되, 그것의 단점과 위험한 부분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더 나아가 보수에 편향된 올드미디어를 바로잡는 것이 향후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V. '샤이 보수'는 존재했다: 중상류층 계급의 반동
22대 총선 서울 지역구 개표 결과. 네이버.
이제 신나는 얘기는 적당히 하고, 샤이 보수 얘기를 해보자. 총선 전 민주당 지지자 커뮤니티의 주류 여론은 샤이 보수가 존재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윤석열이 이렇게나 못하는데 당당히 윤석열 지지하는 철면피들이 어떻게 부끄럽겠냐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결과를 예측했던 사람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그는 22곳의 선거구를 틀렸고 난 23곳을 틀렸다) 자신도 이 정도로 샤이 보수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측을 못했다고 한다. 결국 진보 지지층 대부분, 심지어 나름대로 판세를 읽는다는 사람도 감지를 하지 못한 샤이 보수층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샤이 보수층은 총선 결과를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부울경의 보수층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권 중상류층이다. 이중 전자는 좀 나중에 다루어보고, 후자를 이 문단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분당의 선거 결과가 놀라우면서도 암울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김은혜를 좋아할 줄 몰랐다. 막판 보수 결집으로 여론조사보다는 좁은 약 0.5-1% 격차의 신승으로 김병욱이 이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로 김은혜가 이길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 20년이나 살았는데도 아직도 고향의 표심을 제대로 모르다니 역시 사람 마음은 십 리도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분당은 여러모로 특이한 동네이다. 경기도의 서베를린이 되었지만 그전에 경기도의 강남,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리는 곳이다. 경기도의 대표적인 중상류층 거주지로 물가 폭등보다는 부동산 문제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특히 구축이 많은 1기 신도시 특성상 재개발 이슈도 있는 곳이다.
이번에 국민의힘이 선전한 곳이 대부분 이런 종류의 지역이 많다. 김준혁 후보가 고전한 수원 지역구도 광교를 끼고 있는 곳이다. 부승찬 후보가 고전한 곳도 분당에서 밀려났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산다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수지구를 끼고 있다. 강남 지역의 표심 결집은 말할 것이 없다. 송파병도 위험했다. 한강벨트도 주목할 만하다. 전현희도 생각보다 경합이었고, 동작구는 두 곳 모두 경합이었다가 한곳을 넘겨줬으며, 목동도 위험했고, 용산은 굳건했고, 마포갑까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끔찍한 정치인에게 헌납했다. 반면 다른 서울이나 경기 지역에서는 야당 후보가 비교적 여유 있는 격차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독 중상류층이 다수 거주하는 한강벨트와 분당, 수지, 광교 등의 지역에서 국민의힘 득표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20대 대선 가구 소득별 투표 후보 그래프. 한국리서치.
지난 대선 때 흐름을 보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윤석열을, 소득이 높을수록 이재명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월 소득 700만 원 이상의 중상류층은 월 소득 600만 원에서 700만 원대의 중산층에 비해 윤석열을 지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 구도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번 총선의 최대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대파였다. 물가 문제는 중상류층도 민감한 문제이지만 중산층 이하가 훨씬 신경 쓰는 문제이다. 중상류층은 장을 볼 때 돈이 좀 든다고 생각하지 그것이 생계 문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주 크지는 않다. 우리 집도 결국 전원이 민주당에 투표하긴 했지만 생계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진보적 사상, 철학에 대한 동의 때문에 투표한 것에 더 가까웠다.
이 경우에 중상류층에게 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돈 문제는 부동산과 세금이다. 부동산을 재개발하면 순식간에 목돈이 생기고, 세금을 과도하게 내면 높은 월급이 깎이니까 기분이 훨씬 안 좋아진다. 그런 점이 윤석열 정권의 정책 기조와 조응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윤석열이 세금도 깎고, 부동산 규제도 철폐하니까 중상류층은 실제 삶의 문제에 있어서 문재인 정권 때보다 윤석열 정권 때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즉, 중상류층이든 중산층 이하든 결국 똑같이 민생 문제 때문에 투표를 하긴 했는데, 물가 폭등과 경제난이 딱히 체감이 안되는 중상류층은 그들에게 훨씬 체감되는 부동산과 세금 문제를 이유로 국힘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주변미터'(=중상류층 혹은 상류층)도 탄핵정국 때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였지 싶다. 탄핵 정국 때는 유승민이나 혹은 문재인을 찍겠다는 친구, 가족도 많았지만 이번에는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한 내 주변의 모든 친구와 가족(외가)이 국민의힘에 투표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세금, 부동산 등이라고 답한다. 답답하다. 이런 사람들이 윤석열 정권이 하는 일 전반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이익 투표를 하다 보니 샤이 보수층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이들을 위해 민주당이 무엇을 해야 할까?
VI. 이준석: 우리 세대의 ‘남원정’인가
이준석의 귀환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번 선거의 두 번째 승자는 이준석이다. 유일하게 삼자 구도에서 승리한 非 양당 출신 정치인이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수도권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인원도 조정훈, 김재섭, 김용태 등 청년 보수 세력이었고, 천하람도 가까스로 생환했다. 이전 국회에 비해 이 청년 개혁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 잡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당장 국민의힘에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수도권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보인 사람들이 젊고, 개혁적이며 중도적인 청년 보수 인사라는 것이다. 내 평가가 아니라 일반적 무관심층의 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도봉구 갑에 김재섭이 아니라 구상찬 같은 사람이 출마했다면 안귀령의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유독 선전했거나 당선된 수도권 보수 인사가 우리가 흔히 '보리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여전히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들에 대한 기저에 깔린 평가가 우호적이라고 볼만한 여지가 있다.
이들은 결국 국민의힘 내에서 일정한 세력을 이루어 안철수, 윤상현 등 반윤 인사를 포섭하고, 제2의 남원정으로 국민의힘 내에서 구 세력을 견제하는 새로운 개혁적 파벌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을 때 저런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고,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김재섭, 조정훈, 김용태 등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윤석열에도 불만인 제3지대 중도보수의 니즈를 맞춰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개혁보수'로 묶여 불렸던 일명 '남원정'. 왼쪽부터 정병국, 남경필, 원희룡.
그러나 이준석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면, 그의 미래가 밝다고만 볼 수는 없다.
개혁신당의 합당 과정에서 보여준 미숙한 정치력과 함량 미달의 워딩을 보면, 이준석의 성장에 한계가 있음도 명확하다. 그래서 남원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은 차기 한나라당의 권력이라 불리며 각광을 받았지만, 도지사나 몇 번 하고 정치 경력을 마감했다. 원희룡의 모습에서 이준석의 미래가 보인다. 물론, 이준석은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그의 말은 날카롭고 명확하다. 여의도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인재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한계도 명확하다. 남과 타협하지 않으려 하고, 소수자를 짓밟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며, 나 자신만이 잘났다는 식의 이준석 철학이 여의도 문법에 얼마나 맞을지는 의문이다. 개혁신당 합당은 명분도 없는 합당이었고, 정작 이낙연과 배복주를 받아들이고 나서도 "그들이 주류가 될 일은 없을 것"과 같은 워딩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일주일 만에 당이 갈라지게 하였다. 재밌는 점은 이때 이준석을 버리고 이낙연과 함께한 전병헌, 유승희, 정태근과 같은 사람들이 여의도 정치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준석은 여의도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점 때문에 다른 정치인과 융합되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모습만 보여줌이 개혁신당 합당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의 당인 개혁신당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이준석을 제외한 모든 소속 인원이 선거비 전액 보전 기준인 15% 돌파에 실패했다. 반액 보전 기준인 10%로 잡아도 조응천 한 명만이 넘었을 뿐이다. 양향자는 겨우 3%만을 득표해 간신히 3위에 안착했고, 이원욱도 8%대에 그쳤으며, 문병호나 류호정 등은 출마조차 포기했다. 이것은 2020년 총선 당시 정의당의 성과보다도 나쁜 것이다(심상정과 여영국은 전액 보전을 받았고 권영국, 이정미, 김종대, 윤소하 등 개인 차원에서 좋은 성적을 낸 후보가 많았다). 좋게 말하면 이준석 개인기가 상당하다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의 터전인 개혁신당은 이준석 개인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브랜드 파워도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고, 실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당에 돈이 없다. 조직력이 없고, 후원액이 부족하고, 크게 패한 후보가 너무 많아서 2020년의 정의당처럼 당이 빚더미에 올랐다. 이런 개혁신당의 지속 불가능함이 이준석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돈과 조직이 없으면 지역구 관리를 할 수가 없다. 이번 총선의 심상정처럼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준석 개인이 거대 양당으로 들어가야 하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차라리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당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공중분해 일보 직전이다. 양향자와 김철근, 김용남은 이미 총선 전에 탈당을 시사했고, 정세균 직계로 이준석에 비하면 정치 경력이 몇 배는 긴 이원욱이 당에 계속 남아있어줄지도 의문이다. 지역 조직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고 당직자들도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으로 복당하는 추세. 그렇다면 남는 것은 천하람과 이준석뿐 아닌가? 그 둘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머지않아 개혁신당이 국민의힘에 흡수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국민의힘에 입당해 김용태 등 개혁보수 세력과 손을 잡지 않는다면, 이준석의 미래는 깜깜하다. 대역전극은 훌륭했지만 본게임은 이제부터다. 여의도 정치는 당선 확인증을 받은 이후부터 시작된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준석이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식의 해석이 종합으로 보아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 지지층들이 이준석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이준석에게 가해질 수 있는 최악의 형벌은 무관심이다. 이준석은 잡스러운 인간이다. 잡스러운 인간은 주목할 가치가 없으며,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포상이다. 나는 잡스러운 인간을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매일 잡스러운 인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난 고통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난 이준석의 얼굴을 보기보다는 꽃이나 보고 산책하는 걸 더 좋아한다. 이 글 이후 다시는 이준석을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VII. '이대남'은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
22대 총선 출구조사 연령대·성별 지역구 투표 정당 그래프. KBS.
그럼에도 긍정적인 것은 이대남이 더불어민주당을 예전보다 많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 출구조사에서 이대남의 46.4%는 민주당을 선택했다. 47.9%의 국민의힘과 오차 범위 내이다. 이것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절반이 아직도 윤석열에 당했으면서도 또 속는 황당한 지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긍정 화법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다른 절반은 나름대로 이재명에 대한 악마화를 떨쳐내고, 현재 이대남 커뮤니티 내에서 퍼져있는 극렬한 반페미, 반사회적 경향성을 분명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2021년을 기억하는가? 그때는 DC 민주당 갤러리를 빼면 '퐁퐁남' 담론을 거부하는 이대남 사이트가 그야말로 한 군데도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민주당 갤러리를 '반 퐁퐁 결집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장족의 발전이다. 그때는 72%가 오세훈에 투표했네, 뭐네 하지만, 지금은 무려 절반까지 올라왔다는 게 아닌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희망을 가지자.
지금까지 이대남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노무현을 조롱하는 재미있지도 않은 황당한 억지 밈부터, 퐁퐁남, 과도한 반 페미니즘, 반 장애인, 반 이민, 반 동성애 등 온갖 끔찍한 혐오 담론이 지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디시인사이드'든 '에펨코리아'든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정서만 보면 이대남의 80%가 국민의힘에 투표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그런 이대남 커뮤니티의 혐오 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청년들도 많다는 것이 이번 총선의 결과로 드러났다. 민주당이 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혐오 문화'에 반대하는 절반의 이대남들을 잘 설득하고, 이들이 원하는 바를 경청해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다음 세대의 민주당을 위해 민주당이 할 일이 많다.
VIII. 189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우리에게는 189석이 남겨져있다. 이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189석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이냐》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망명가 시절 저술한 철학/정치선전 도서이다. 유명하지만, 재미없는 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를 해야 한다"라는 내용보다도 "~를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절반은 당시 유행했던 신칸트주의 철학 인식론을 비판하는 내용이고, 그다음 절반은 당대 러시아 혁명론자들을 논박하는 내용이다. 레닌은 과거의 잘못된 세력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 즉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질문이 출발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22대 총선 개표 방송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낙연. 연합뉴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4년 전에 답이 있다. 우리는 180석을 이낙연의 더불어민주당에 몰아주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엄중 리더십'으로 불린 이낙연의 리더십은 박근혜 사면론, 각종 이슈에 대한 늑장 대처, 조직력 붕괴와 당원 이탈로 얼룩졌다. 이것은 결국 이낙연의 민주당이 당시 시대의 정서에 부응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민주당은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민주당은 극소수 의원이 아닌 대다수 당원, 그리고 국민의 의사에 맞추어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의장을 잘 뽑아야 할 것이다. 박병석과 김진표로 대표되었던 지난 두 명의 국회의장은 기존 국회의 문법에 맞추어 중립적 태도를 유지해, 민주 당원의 속을 태웠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둘의 방법이 옳겠지만, 지금은 비정상의 시대이다. 비정상의 시대에는 비정상의 방법이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추미애 국회의장을 지지한다. 그는 어떤 때에 원칙을 지켜야 하고, 어떤 때에는 더 큰 원칙을 위해 작은 원칙을 어겨야 하는지 안다. 당원과 국회의원 간의 소통도 늘려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시스템 개혁으로 당원 민주주의의 힘은 커지고 있지만, 지난 전략공천에서 보여주었다시피 부족한 부분도 많다. 2026년 지방선거와 이후 있을 윤석열 퇴진을 위해서는 당원의 의사가 중앙당에 더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직접민주주의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부산 유세 현장. 2024년 3월 21일.
새로운 더불어민주당은 또한 회색지대에 속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이 이를 보여준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중도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했던 것을 정책화한 정당이다. 조국혁신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진보는 물론 중도도 윤석열 심판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도하게 중도층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혁신당은 물론 새로운미래, 녹색정의당 등 양당 심판을 외친 회색지대의 제3당은 이번 선거에서 모두 참패했다. 반면 이성윤, 이언주와 같은 극렬 반윤 인사들은 쉽게 의회에 입성했다. 이러한 정황은 모두 국민이 강력한 윤석열 정부 견제, 눈치를 보지 않는 '선명 야당'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그것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심판에 매몰되어 세부적인 정책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2012년의 민주당과 2020년의 통합당은 결국 심판에만 매몰되었다가 자멸하고 말지 않았는가. 민주당이 윤석열을 부정하는 세력일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 우리 당은 이번 총선에 좋은 정책을 많이 냈다. 주 4일 노동제부터 전 국민 고용보장 제도(한창민 후보의 공약) 등, 노동권과 여성권을 개선하고, 미래 기후 위기에 대응하며, 신산업을 육성하는 공약이 많았다. 이것을 차례차례 실천해 나가야 한다. 윤석열을 데드덕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정책을 발의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실질적인 정부이며, 윤석열은 무능한 가짜 정부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재명이 50%를 넘어 60%를 대선에서 득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것들이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섣불리 실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 정부는 비정상적인 정부이고, 200석을 넘지 못하면서 의회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으로 좁혀졌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패스트 트랙을 이용하고, 의회의 고유 권한을 통해 정부 여당을 끊임없이 압박해야 한다. 물론, 그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민주당이 생각한 것만큼 잘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절망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지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고, 우리가 조응천에, 이원욱에, 전해철에 그랬듯 당원이 갑이며, 당원의 요구를 따라야만 재선이 가능함을 의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여건까지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대한 이재명과 추미애, 조국의 민주당을 이해하되, 잘 못한 부분이 있다면 회초리를 들자.
IX. 부산·경남에서의 아쉬운 성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22대 총선 부산 지역구 개표 결과. 네이버.
가장 아쉬운 것은 부산과 경남의 결과이다. 나는 부산에서 민주당이 최소 4석에서 최대 11석, 경남에서도 못해도 5석을 확보했을 것이라 보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 상으로 부산과 경남에서 총합 10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유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 총선보다도 못했다. 경남은 현상 유지에 그쳤고, 부산은 박재호 의원과 최인호 의원이 재선에 실패해 전재수 혼자만이 생환했다. 18대 총선 이후 최악의 결과이다. 참담하다. 이번 총선 때 부산에 출마한 사람들 중 괜찮은 사람들이 많았다. 서은숙, 홍순헌, 정명희, 배재정, 변성완... 다시는 없을 인재들이 너무나도 무참하게 패배했다.
오늘 아침, 참담한 마음 절반, 들뜬 마음 절반으로 집을 나서면서 커뮤니티를 잠깐 뒤적였다. 부산의 결과에 실망하면서 앞으로 부산 말고 충청에 집중해야 한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한두 개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론이 그러했다. 극단적으로 부산을 버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글도 있었다. 모두 이해 가는 반응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실망하고, 그다음에는 지치고, 그다음에는 분노로, 그다음에는 체념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산을 포기해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번에 부산에 수고를 덜 들이고 차라리 한강과 충청도에 더 힘을 쏟았다면, 허성무나 김태선은 낙선하더라도, 서산 태안, 충주, 보옥영괴, 동작을, 도봉갑과 같은 지역구를 탈환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놀라운 수치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1992년 노무현의 낙선 이후 단 한 번도 당선자를 낸 적이 없는 서구 동구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처음으로 42%라는 득표를 냈다. 부산 전체에서 민주당이 얻은 득표는 무려 45%였는데, 이는 삼당 합당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장군, 사상구, 북구 을과 같은 지역구는 정말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고, 조경태도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따라잡았다. 강서구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아까운 지역이라 할만하다. 여론조사상 접전에도 불구하고 46%를 얻는데 그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과 24년 전, 노무현이 이 지역구에 출마했을 때, 그가 얻은 득표율은 36%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것은 부산의 민주당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수치 상으로는 그때 한나라당이 모든 의석을 휩쓸었고,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단 한석을 제외하고 모든 의석을 휩쓸었으니 비슷한 결과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나아졌다. 단 몇 천표, 몇 %의 스윙만 있다면 10석 이상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결국 낙선하면 땡 아니냐고? 부산에서의 결과는 그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먼저, 부산에서 민주당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패배한 부산에서 민주당이 다시 40%대의 득표율을 수복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후일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많은 효과를 발할 것이다. 기초의원 수백 명, 광역의원 수십 명을 당선시킬 만큼 득표 수준이 좋았다. 대선 때 우리가 얻을 표는 수백만 표나 늘어났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부산의 민주당원들은 어떻게 버텼나 싶다. 노무현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새천년민주당에서 그 말고 제대로 부산에 도전한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같이 눈물을 흘길 동지가 5명도 안되었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아쉽게 낙선한 유능한 인재가 수십 명에 달하며, 그들과 같이 우는 자원봉사자들은 수천에 이르고, 노무현이 한때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연설한 곳에는 이제 수만의 민주당원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부산과 경남에서의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 결과가 20년 전,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아진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노무현 당시 부산 북·강서 을 후보의 일명 '공터 유세'. 부산 명지시장. 2000년 4월.
이렇듯, 외양상 실패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도 성공을 찾을 수 있다. 성공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도 실패를 찾을 수 있다. 국민의힘은 부산 경남 지역의 노령화와 노인 총 결집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십 개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경합을 치렀고, 본래 집중해야 할 수도권 경합 지를 모두 민주당에게 내어줬다. 노자가 말했다시피,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성공에서 실패가 있고 실패에서 성공이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결과 속에서, 실패와 좌절의 면모만을 본다면,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공과 도전의 열정을 보고 다시 일어나 싸운다면, 2026년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에서 다시 멋지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우는 것은 오늘까지면 족하다. 다시 일어나 향후 2년, 4년간의 싸움, 밭갈이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해당된다. 총선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도 있고, 총선 이후 민주당의 대응, 대통령의 끝없는 독선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쉽게 포기하면 결국 실패하지만, 끝까지 버티며 싸우면 이길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배신하지 않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인내의 의지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생의 모든 역경과 고난, 배신을 견뎌내면서도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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