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이 부럽지 않은 저공비행이다.
여당의 총선 참패 직후 한국갤럽에서 실시된 4월 3주차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3%를 기록, 취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취임 2년 만에 9번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헌정 사상 가장 많은 거부권을 남발한 대통령(이전 노태우·7회)이 된 윤 대통령에게 이젠 국민이 거부권을 꺼내든 모양새다.
총선 직후 선명해진 민심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한국갤럽의 자체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단 23%에 불과했다. '잘못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68%였다. 비율로 보면 1:3에 가까운 결과다. 연령대별로 나누어 본 결과에서는 18~29세에서 긍정 14%·부정 70%, 30대에서 긍정 13%·부정 80%, 40대에서 긍정 12%·부정 86%로 젊은 층의 비토가 완연했다. 이 추세선은 70대 이상에서 긍정 43%·부정 37%로 뒤집히기 전까지 변하지 않아 7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부정평가가 우세했다.
직업별 응답 결과에서는 기존 여론조사들의 경향대로 무직/은퇴/기타 층에서 긍정 35%·부정 54%, 전업주부 긍정 40%·부정 49%로 선전하였으나 그 외 나머지 직군에 종사하는 응답 계층들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아봐야 20% 초반을 넘지 못했다. 한편 생활수준별 응답에서는 '하'에서 긍정 30%·부정 57%로 그나마 가장 높았다.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4%로 1위를 기록했으며, 지난 21대 총선 직후(2020년 4월) 실시된 같은 항목의 조사에서 40.2%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한 바 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이번 조사에서 1% 미만의 지지를 받아 완전히 낙마했다. 이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광주 광산 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민형배 당선인에게 선거비 전액 보전 기준(15%)도 지키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 '높은 지지율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후광이 걷힌 후 반복된 보신주의적 행보로 범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신임을 잃은 탓에 여당의 부진으로 인한 수혜를 전혀 받지 못했다.
함께 실시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총선을 압승한 제1야당 민주당이 31%로 1위, 여당 국민의힘이 30%로 2위, 조국혁신당이 14%로 3위를 차지해 다른 군소 정당들에 비하면 최소 4배수를 넘는 유의미한 격차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갤럽은 '총선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 이유'도 추가로 물었는데, '야당 의석수 부족/200석 미달'을 2위로 만든 18%의 응답이 특기할만했다. 가짜 뉴스의 시대에 '부정선거'를 꼽은 3%도 눈에 띈다.
해당 여론조사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 조사원 전화면접, 표본오차 ±3.1%p, 신뢰수준 95%였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 방식과 메타데이터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은 이곳에서 참고할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유권자들이 윤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는 '경제/민생/물가'가 18%, '소통 미흡'이 17%, '독단적/일방적' 10%로 세 손가락을 꼽아 4위 이하의 다른 이유들과 큰 격차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었다. 식료품 소비자 물가는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하러 가고 있다. 중산층·서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모든 경제지표가 악화됐다. 와중에 대통령은 대파 한 단의 가격으로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여당 인사들은 실언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민들과 불필요한 기싸움을 벌였다. 3일이면 식었을 이슈가 선거 당일까지 이어졌다.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대파를 들고나왔다. 윤 대통령이 선거 직전 두 달 동안 전국을 쏘다니며 합이 1000조에 이르는 공수표를 뱉고 다닐 때도 침묵을 지켰던 선관위가 입을 열었다. "정치적 목적이 없는 대파는 반입이 가능하다"라고 말이다.
지난 15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첫 주례 회동에서 "공직기강을 다시 점검하라"라고 말한 것이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의 첫 방점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 3일만인 지난 18일 "선거가 끝난 후 어수선한 공직사회의 기강을 특별 감찰 등을 동원해 다시 잡을 것"이라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참모진들에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라고 흘린 것은 지난 16일이었다. 초유의 '비공개 카더라' 대국민 사과였다. 윤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여당의 평가도 평가지만 우리도 더 소통하라는 것"이라며 반성을 시늉했다.
선거 직전까지 혹자들은 부정했지만,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중간 평가'였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23%짜리 지지율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떨어지는 숫자 외에 변하지 않는다. '출구 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한 눈치 빠른 이들은 철면피를 집어 들고 이 사실에 대한 부정을 조금 더 연장했다. 물론 '보수 궤멸을 위해 심어진 좌파 쁘락치 윤석열' 운운하는 유튜브 채널보다야 삼삼한 맛이겠으나, 서서히 변하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지켜보는 것도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의 내심에 〈Billie Jean〉의 가사 한 소절이 있는 듯하다. "But the kid is not my son".
직전 보수 대통령인 박근혜 前 대통령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대 총선 직후에 치러진 2016년 4월 3주차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 박 前 대통령의 지지율은 선거 전 39%에서 29%로 10% 가까이 내려앉았다. 그의 지지율은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을 단독 보도하기 직전까지 30%대 초반 박스권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의 우군으로 보였던 조선일보 등의 기성 언론들도 그를 손절했다. 국민에게 과락에 가까운 낙제점을 받아 들고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반복된 역사의 결말은 비슷할 것이다.
새삼스러운 커리어 로우를 경신한 채 레임덕에 빠진 윤 대통령에게, 본인의 무능을 성찰할 수 있을 최소한의 유능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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