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는 현대건설 사장,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이었다. 재임 기간 중 4대강 사업, 뉴타운, 용산참사, 쌍용차 해직사태, G20 정상 회의 같은 다사다난한 일을 겪었고, 재임 후에는 BBK와 다스로 대표되는 부정부패 사건으로 언론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처럼 많은 것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이명박이지만, 그 많은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말이 있다면 '욕망의 정치화'일 것이다.
왜 그런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을 지지한 사람이나, 한나라당 당직자들이나, 이명박 본인이나 내세운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이명박의 슬로건은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습니다",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었다. 돌이켜보면 선거 유세 도중에도 이런 유(類)의 쇼를 많이 했다. 항상 자기가 뭔가를 해봐서 안다고 했다. 포항 시장에 방문해서 직접 풀빵을 능숙하게 굽는 모습도 보여줬고, 잔치국수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이러한 서민적인 모습이 쇼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 이명박이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솔직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 이명박은 찢어지게 가난한 과일장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려대 경영학부에 입학해 말단 사원에서 현대건설 사장까지 오른 사람이다. 즉, 이명박의 각종 서민적인 쇼는 "나처럼 가난했던 사람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더니 이렇게 잘 살지 않느냐. 너희 국민들도 나처럼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줄게"라는 뜻을 함의하였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보물.
한마디로, 국민성공시대였다. 이명박은 자신의 서사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결합하는데 언제나 능숙했다. 청계 고가도로 상가를 방문해서 나도 그렇게 어렵게 장사를 한 적이 있다며 눈물을 잠깐 훔치더니, 고가도로를 헐고 종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도심 하천 공원을 만들었다.(당시 청계고가 밑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가든파이브로 쫓겨나 모두 망했다) 정책적으로 보자면 상당히 훌륭한 업적이긴 하지만, 사실은 다소 정치적이다. 이명박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운명도 바꿔놓겠다는 야망이 숨겨져있다. 구질구질한 청계고가도로를 부수고 그곳을 세계적인 공원으로 만든다니,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은 인간의 '성공하고 싶은' -다시 말하자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낡은 것을 버리고, 부수고, 다시 새로 멋진 것을 쌓는 것이다.
2007년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명박의 이상에 동조했다. 이명박은 실로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대통령으로서 내세운 공약도 서울시장으로 했던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G20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4대강 사업, 한반도 대운하, 뉴타운 개발 같은 것은 이전의 낡아빠지고 가난한 대한민국을 고쳐서 잘 사는 멋진 나라를 만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이명박 정권의 실체를 잘 보여준 것이 뉴타운 사업이라 할만하다. 뉴타운은 파괴적이었다. 대선 1년 후에 치러진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김근태 의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한나라당과 똑같은 뉴타운 공약을 내세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김근태는 그 선거에서 졌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인권, 정의,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보다도, "국민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슬로건이 더 인기 있던 시대였다.
17·18대 총선의 서울 동북권 결과.
정말로 재밌는 것은, 이런 '국민성공시대'라는 의제에 동감한 사람들은 강남의 부자들도 있었지만 강북의 서민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8대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동북부 지역에서 추미애의 지역구와 강북구 을을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이겼다. 비교하자면 4년 전에는 이 지역에서 홍준표를 제외하면 그 어떤 한나라당 후보도 생환하지 못했다. 강남이야 언제나 보수를 찍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서민들이 유독 한나라당에 표를 상당히 많이 준것은 특기할만하다. 서민의 친구, 민주주의의 대변자, 없는 자들의 정치인을 자처해왔던 김근태 의장이, 방송에서 술이나 먹고 무상급식 폐지해야 한다고 호통치는 그 천박한 신지호에게 패배해버린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도봉구 갑 선거구에서.
더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이명박이라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은 부자가 아니지만, 미래에 부자가 되리라는 욕망'이었다. 부자들도 한나라당을 찍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부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많은 서민들이 2번을 찍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뉴타운이 이명박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낡은 빌라촌을 허물고 멋진 아파트를 지으면, 부동산으로 순식간에 부자가 될 것이라는 그런 욕망이 서울과 경기 일대에 퍼져있었다. 뉴타운 열풍은 한국 최초의 재개발 열풍이었다. 여기서 이명박의 인생과 정치관이 그들의 욕망과 교차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수성가해 서울을 뜯어고친 이명박의 일대기를, 부동산이나 4대강 등으로 한바탕 부자가 되려는 자신의 욕망과 겹쳐보았다.
나머지도 대체로 비슷한 맥락이었다. 4대강이나 747 정책도 그렇지만, 별달리 연관이 없을 것 같은 G20 회의 도중 이명박이 보여준 각종 추태도 이와 비슷하다. G20이 경제적인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과거보다 더 잘 사는 성공한 나'라는 큰 담론에는 들어맞는다. 거지같이 살았던 한국이 이제 세계 지도자들이 찾는 멋진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낡은 빌라촌이 멋진 뉴타운이 되었다시피. 그래서 그때는 말도 안 되는 국위선양의 사례가 튀어나왔다. 반기문도 그랬고, 731 부대를 두고 독립운동가라고 하는 멍청이 총리 때문에 휘말리게 된 '세계 7대 경관' 사기 쇼도 그랬다. 그러한 촌극은 모두 잘 살고 싶고, 결국 부자가 될 거라는 사실을 증명받고 싶은 대한민국 대다수 중산층~서민의 정서와 부합했다. 그래서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슬로건이 나온 게 아닌가.
영화 〈삽질〉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물론 모두가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참담했다. 4대강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토목공사 사업으로 남았다. 뉴타운에 혹해서 한나라당을 뽑은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살지도 못하게 되었다. 평택이나 안산과 같은 교외 도시로 밀려났다. 큰 사건을 찾을 필요도 없다. 2009년 3월 9일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에 다니던 한 학생이 높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방에서 연탄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1년 후 이기수 총장은 "등록금이 싼 편"이라고 발언했다. 그다음 해에는 정부 공약이었다가 폐기된 반값 등록금의 이행을 요구하는 연대 시위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을 동원해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을 불법적으로 감시했고, 등록금 인하에 반대하는 여론조작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국민성공시대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집단 사기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국민의 욕망을 불태워서 집권해놓고 그 욕망을 갈 데 없이 방치해버렸다. 정책은 끝없이 취소되었고 토목공사는 삽질로 끝나버렸다.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댓글부대를 운용하고 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DDoS) 공격해서 젊은이들이 투표를 못하게 하는 치졸한 대응으로 맞섰다. 다행인 점은, 우리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20%대의 지지율로 퇴임했고, 2017년 BBK 사건 및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다. 가히 이명박의 패배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이명박이 아니라 이명박의 정신까지 패배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성남시청에서 열린 '분당 빌라단지 통합 재건축을 위한 주민 설명회'에 참석한 김은혜와 안철수. 김은혜 페이스북.
이동관, 이주호, 이종섭, 김은혜, 신지호, 김태효, 유인촌 같은 주요 MB 정권 인사가 윤석열 정권에 입각했다. 김은혜는 대통령실을 나온 이후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분당구 을의 전 국회의원이자 이명박 정권의 오른팔이었던 임태희는 대통령 인수위에서 활동하다가 경기도 교육감으로 출마해 당선, 사실상 현재 보수 교육감의 대표처럼 활동하고 있다. 이명박의 왼팔 박형준은 지금 부산시장이다. 현재 대통령실 입성이 거론되는 장제원이나 정진석도 이명박의 사람이다. 우리는 제2의 이명박 정권에서 살고 있다.
기실, 정권만 이명박인 것이 아니라 정신도 이명박이다. 부동산에 유독 예민한 지역이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많이 찍었다. 마포구 갑, 분당구 갑구와 을구, 용인시 수지구, 수원 광교, 동작구 을 같은 곳 말이다.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도봉구 갑도 결국 이명박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는 김재섭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역시나 재밌는 건 이 지역에 사는 서민들 중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부동산으로 자신이 부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지금은 내가 중산층이나 서민이더라도 미래에는 재벌이 될 것이라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샤이 보수'가 되었다. 그들이 표방하는 재건축이나, 이명박이 표방한 뉴타운이나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다. 같은 관념적 기반 하에서 이명박과 윤석열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권을 만든 것도 부동산이 아니었나? LH 사건과 종부세 논란이 아니었다면 재보궐선거를 통해 오세훈, 이준석, 윤석열이 그렇게 부상할 수 있었을까? 욕망의 언어, 욕망의 표심, 욕망의 정치, 욕망의 정권.
이명박과 윤석열의 공통점을 보고 있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현 정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정권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하자면, 이명박의 재림이다. 천공이나 김건희 여사, 김한길과 박주선을 굳이 정권의 배후자로 찾을 필요가 없다. 이 정권을 지배하는 것은 이명박의 영이다. 썩은 영은 파묘를 해서 퇴치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관이 전국의 모든 아파트, 모든 빌라촌에 심어져있다면,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뽑아야 하나? 결국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앞으로 이 토건비리 보수정당이 존재하는 이상 영원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추악한 〈MB의 추억〉을!
아, 이 얼마나 역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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