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4월에 대한민국은 선택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날 300명의 국회의원을 투표를 통해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한다.
국회의원 선거란 무엇인가?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상에 초석을 놓은 철학자 존 로크는 국회를 "국민의 의지를 대리하는 최고 권력 기구"라고 규정했다. 한마디로 국민은 자신의 대리자인 국회의원을 선택해 법을 제정하게 하고, 이 법은 한국이라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규칙이 된다.
말로는 이상적이지만, 장점만큼이나 한계점도 명확하다. 사실 우리는 투표를 한 이후에 후회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선택해놓고 다음 몇 년간 후회하는 대의민주제의 단점 때문에 최근 여러 나라에서는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이해되는 반응이다. 그동안 정치는 민중의 의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일반 국민의 삶과 유리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투표를 할 것이다. 정치학자 알랭 바디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 하는 투표야말로 대의민주제 체제에 대한 민중의 동의를 드러내는 강력한 의지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투표에 막연한 의문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에 끊임없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큰 변화를 원하면서 한국의 제도적인 체제에 동의를 표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장 큰 제1당에 투표하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투표를 거부해야 하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을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 왜 제도권의 제1당에 투표해야 하는가?
1장. 어제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는 선거철 의례 행사가 되어버린 이러한 질문이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왕에 의해, 조정에 의해 혹은 총독부에 의해 지배되었던 한 세기 이전의 신하 된 인간, 즉 신민(臣民)들은 자신의 대리자를 선출할 수 없었다. 그들의 대리자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의 만세는 신민을 국민으로 도약하게 했다. 대한민국 헌법의 가장 첫 문장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3.1 운동은 왕의 죽음으로 비통한 감정을 느끼던 33명의 애국자들이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이 경찰에 체포된 후에도 3월 1일의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태극기를 흔들었고, 그런 행동을 통해 자신이 조선반도에서 조선말을 쓰는 조선인임을 자각했다. 천민이든 양인이든, 함경도에서 왔든 제주도에서 왔든 태극기를 흔들면 모두가 같은 조선인이었다. 그들은 그 시점에서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지배당하는 신민이 아닌,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대한이라는 나라의 일원이라는 동질의식을 토대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국민(國民)이 된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일은 1919년 3월 1일이다.
〈3.1만세운동〉, 서세옥, 1986년, 한지에 수묵 채색. 뉴욕한국문화원.
그렇지만 3월 1일 우리 국민의 탄생이 곧바로 국민을 주권자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3월 1일 만세 운동 이후로도 우리는 26년간이나 일제의 통치를 받았다. 1945년 해방된 이후 몇 년간 미 군정이 우리를 통치했다. 국민이 최초로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이 스물아홉 살 생일을 맞이한 지 두 달하고 아홉일 되었을 때이다. 그것조차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38도선 이북의 국민은 그런 권리를 얻지 못했고, 제주도의 국민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칼에 찔려 죽었다. 1952년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을 통근 버스에 태워 납치한 후 날치기로 재선 개헌안을 통과시킨 이승만은 그해의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이승만은 국민의 시대가 아닌 신민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는 다시 3선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을 통과시키고 세 번째 임기를 위해 출마했다.
민주당이 이 선거에서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민주당의 목표는 단순했다. 3월 1일의 국민이 소리 높인,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이 최초의 민주당원들은 나라가 잘못된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더 이상 신민이 아닌 국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 나라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러한 의지 속에서 1955년 9월 18일 대한민국 국민이 36살이 되었을 때 민주당이 태어난 것이다. 서른여섯 살은 한 사람의 인간에게 미숙한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에 접어드는 출발점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당의 탄생을 통해 더욱 성숙해졌다.
해공 신익희 선생 국민장. 1956년 5월 2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56년, 드넓은 한강의 백사장에서 민주당은 국민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민주당의 첫 번째 대선 후보인 해공 신익희 선생은 그날 백사장 연설에서 30만 서울시민에게 이승만 정권의 부패상과 비민주주의성, 독재로 향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해공 선생을 역사의 승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비 내리는 호남선에서 급작스레 서거하였다. 이승만은 유력 야권 대선후보의 사망으로 쉽게 3선에 성공했고, 자신에 유일하게 반대한 다른 대선후보를 간첩으로 몰아 살해했으며, 당적이 다른 부통령을 상대로 암살을 사주했다. 하지만 이승만이 살해한 것은 죽산이었지 국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해공이 그들에게 상기시킨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4.19 혁명 당시 고려대 학생 시위대. 1960년 4월 18일. 국가보훈처.
1960년 그들은 일어섰다. 대한민국 헌법의 첫 문장에서 3.1 운동에 이어 언급되는 두 번째 사건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혁명이다. 이 사건은 우리 한국의 역사에서 국민이 위정자를 이긴 첫 번째 사건이었다. 그 이후, 정치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국민은 언제든지 자신을 지배하고자 하는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을 신민으로 여기는- 세력을 쫓아냈고, 1979년의 부산/마산과 1980년의 광주, 1987년의 전국 규모 항쟁은 이러한 점을 지속적으로 입증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장의 종이를 받게 되었다. 구겨버릴 수도 있고 찢어버릴 수도 있지만 누구도 감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신성한 주권자의 종이를.¹⁾
2장. 오늘
이렇게 보자면 한국의 역사는 참으로 자랑할만하다. 자랑하기에는 민망한 부분도 많지만,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우리가 우리 스스로 극복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우리의 역사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일본은 외세의 힘을 빌려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무너트려야 했지 않은가. 그런 점을 보면,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국민의 정당한 권리 - 즉 주권을 쟁취해낸 이 역사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자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수치스러워할 만한 것은 일본이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자랑스럽게 여기듯 우리나라의 일부 세력도 독재와 위정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국민이 태어난 지 올해로 무려 105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국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여러 기관은 국민을 주권자가 아닌 통제 대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처음에는 민주주의 원칙보다 경제 성장을 우선시한 박정희가 그래도 한국을 먹고 살 만하게 만들었다고 옹호했다. 그다음으로는 광주 항쟁에 북한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그들은 4.19 혁명의 흔적을 지우고자 한다.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고, 제주 10만 양민의 학살자를 국부로 내세운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일부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를 통해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을 보면, 그들이 바라는 것은 아주 명확하다. 그들은 국민을 신민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그들이 단순히 역사책에서만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열망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오늘을 말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고로 수백 명이 죽었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 국민을 속인 엑스포 사기극 때도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사과 한번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국민의 방송이어야 할 국영방송을 자의적으로 장악하고 통제했다. 국가기관을 동원해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향해 강압적인 수사를 벌였다. 그들은 국민을 향해 사과하지 않는다. 소통도 하지 않는다. 언론은 진실을 알리는 기관이 아닌 정권을 홍보하는 부처로 전락했고, 정권에 직언을 하는 자들은 입을 틀어막혀 끌려나갔다. 그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유산인 민주주의에 반하고 있다.
그런 행동을 하고서도 그들은 다시 표를 구걸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추태를 부리고 반칙을 하고 있는지 모두 다루지는 않겠다. 하지만 선거는 정치적인 이상을 내세워 국민이 그 이상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여당이 꿈꾸는 이상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현재의 정권을 수호하는 것이 그들의 이상인가? 현 정권이 내세우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그들은 진실을 말하는 자들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보면, 대한민국은 3.1 운동과 4.19 혁명의 정신을 계승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나라이다. 무엇이 정의인지는 정부가 아닌 국민이 정한다. 만약 그 원칙을 거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우리 민주당은 다른 원칙을 믿는다. 우리 대한민국은 더 잘할 수 있는 나라이다. 우리 민주당도 더 잘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승만의 당이 아니라 해공 선생과 장면 총리의 당이다. 박정희의 당이 아니라 김대중의 당이다. 이명박의 당이 아니라 노무현 김근태 문재인의 당이다. 이제는 그들의 바통을 이재명이 잇고 있다.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 1971년 3월 21일.
김대중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4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을 때 우리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우리는 김대중의 평화주의를 믿는다. 사자와 양도 평소에는 먹고 먹히는 관계이지만 그들도 숲이 불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²⁾ 우리 인류도 이 신냉전의 구도, 핵전쟁의 위기 속에서 지구촌의 한 주민으로서 전쟁이 아닌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우리는 김대중의 미래산업에 대한 혜안을 믿는다. 단기적인 이익을 좇아 R&D 예산을 삭감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미래의 환경을 위해, 경제를 위해, 인류 과학의 발전을 위해 미래산업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 함을 민주당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10월 9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5년 후, 우리 국민은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를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잘 되기 위해서는 경제가 잘 되어야 하지만, 경제가 잘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잘 되어야 한다. 좋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어떤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떤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이회창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말하자면 학벌, 재산, 사회적 지위와 같은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대접을 받는 사회를 우리는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2017년 5월 23일. 청와대 대통령기록관.
문재인은 우리 당의 대선후보 중 3번째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문재인은 우리가 어떠한 국가 속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더 이상 남부러워할 국가가 아니라, 남들이 우러러보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이처럼 민주당은 정부가 사과할 줄 알고, 정부가 소통할 줄 알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선진국과 같은 나라를 지향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정부를 정부답게, 그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게 하라.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잠실새내역 유세. 2022년 2월 16일. 사진작가 김진석.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이재명이 잇는다. 이재명이 혼자가 아니다. 정치검찰의 칼에, 우익 언론의 펜대에 이재명은 몇 번이나 쓰러졌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김구, 신익희, 장면, 전태일, 장준하, 함석헌, 오월광주 이천영령,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 문재인의 정신이 이재명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이재명은 그들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원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역대 그 어떤 민주당보다도 개혁적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역대 그 어떤 민주당보다도 당원의 이야기를 잘 듣는 민주적인 정당이다. 이재명은 새로운 역사이자 거부할 수 없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질서이다. 나는 그러한 이재명의 정신을 믿는다. 당원들도, 지지자들도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을 믿었듯 이재명을 믿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대리인일 뿐, 우리 스스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다. 민주당의 마지막 주인공이자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은 민주당의 주인이자, 국가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국민의 의지를 위해 싸웠다. 민주주의의 이상향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투표는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행위이다. 투표하자. 투표하면 국민이 이긴다.
3장. 내일
지난 2년간, 이렇게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금자탑이 한순간에 무너진듯한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 좌절해 무너질 필요가 없다. 4월 11일, 우리는 새로운 국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국가를 번영으로 이끌라는 국민 대다수의 외침에 국회가 다시 응할 것이다. 희망이 이길 것이다.
재경전북도민 신년인사회에서 만난 윤석열과 이낙연.
물론, 선거를 통해 뽑힌 대리인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는 있다. 4년 전의 선택도 그와 같았다. 우리는 검찰을 개혁하기를, 썩은 언론을 청산하기를, 정부가 잘 작동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를 원하며 180석을 선출했다. 국민은 의지를 내비치고 정치는 이것을 수행한다. 한데 총선 이후 180석을 이끈 지도자의 역량 부족으로 민주당이 연이어 침체되었고, 개혁을 향한 강한 의지는 4년이나 꺾였다. 우리 대한민국은 가장 강한 개혁의 의지를 국민이 내비친 지 2년 만에 가장 강한 반동의 의지를 내비친 자를 대통령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180석은 헛수고라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총선 이후 민주당의 무능함에 질려서 재보궐 선거와 지방 선거 때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동지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의 의지를 대리인들이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면 투표에 의미가 있나?
민주당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 델리민주.
180석이라는 숫자가 주는 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180석이라는 것은, 활자상으로 존재하는 숫자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독재의 망령을 청산하기 위해 몰아준 준엄한 의지였다. 정치를 하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그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고르는 것은 국민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조금 못나면 어떤가? 한 번에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인내심을 가지자. 정치인이라는 개인은 언젠가 정치판을, 혹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100년이 지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국민이 이 자리에서 똑같은 의지로 행동한다면, 정치는 몇 번은 대오에서 이탈하더라도 결국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이낙연의 실패를 보았지만 동시에 이재명의 희망을 보았다. 이재명을 77.77%라는 역사적 득표율로 당 대표로 선출한 것은 180석을 선출한 것과 정확히 같은 의지였다.
180석으로 많은 것을 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역대 최고 수준의 현역 교체율과 주 4일 노동제, 포괄임금제 폐지와 같은 민주당의 새로운 방향성은 4년 전 국민이 압도적이고도 확고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시감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3월 1일, 그날 처음 태어난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민주당이 지난 4년간 겪은 실패보다도 더욱 참혹하게 실패했다. 어떤 사람들은 만세를 부른다고 독립이 되었냐고 조롱한다. 그들의 말은 반은 맞다. 1919년 그 즉시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의 삼월에 국민이 태극기를 흔들었기에 그들은 하나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그 희망을 가슴에 품고 1945년 8월의 열다섯 번째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희망뿐이 아니다. 독립운동에 다시 추동력을 불어넣은 것도, 저항의 문학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3.1 운동에 대한 공통의 기억 때문이었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그때는 실패했겠지만, 그 기억은 우리의 곁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으며, 그 기억 덕분에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독립을 쟁취하였다. 3월 1일 최초의 국민이 26년의 실패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린 적이 없는데, 우리 민주당원들이 겨우 4년의 좌절 때문에 투표소에 나오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처럼, 국민의 행동, 국민의 선택, 국민의 주권행사는 정책을 결정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선거를 할 때 무엇이 바뀌냐고? 물론 몇 년간은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를 통해 우리 국민이 어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미래를 향한 강한 명령이 된다. 우리의 의지 하나하나가 뭉쳐 큰 목소리가 되고, 그 목소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나? 한 방향은 60년 전 신민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방향은 주권자 국민의 가치가 되살아나는 민주공화국을 지향한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더라도 국민이 원하는 가치가 바로 관철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큰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급하게 실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방향을 정하고 키를 돌리면 배는 느리더라도 그 방향을 향해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하지만 확고하게 나아간다. 역사의 발전은 언제나 그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Romantic Moonlight Sailing〉, 페터 노트로트, 2018년, 캔버스에 아크릴.
지금 우리의 선택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퇴행적 세력에 대한 거부를 드러낸다. 동시에 권력 견제와 진보적 사회개혁을 약속하고 있는 세력을 선택함으로써 미래로의 전진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혐오, 차별, 냉소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 통일의 미래를 꿈꾼다. 우리는 희망의 정당이다. 우리가 이러한 정당, 이러한 명문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이러한 선택은 절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민주당을 지지한 모든 이들도 독재와 퇴행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와 개혁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움직이는 커다란 바람이 되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우리의 선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는다. 지금 우리의 선택은 먼 미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 우리의 아들과 딸들, 먼 후손들에게 역사 발전을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나는 역사에 있어 낙관주의를 믿는다. 우리의 선택은 과거 3월 1일과 4월 19일의 함성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운명과 그 속에 사는 모든 시대의 국민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어떤 폭풍우가 닥치더라도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희망의 별빛이 되어줄 것이다.
열대 바다를 표류하는 선원이 잠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밤하늘을 바라볼 때, 그는 폭풍우의 구름을 뚫고 바다를 희미하게 비추는 남십자성을 볼 수 있다. 머지않아 구름이 걷히고, 파도가 잔잔해지고, 남십자성은 더욱 밝게 항해의 경로를 비춘다. 그 선원은 알고 있다. 머지않아 해가 눈부시게 떠오를 것이란걸. 그의 배에 탄 사람들에게 희망의 마음을 품게 하라. 폭풍우의 밤이 지나가고, 아침과 함께 기쁨이 오리니.³⁾
투표해야 이긴다. 투표하면 이긴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손녀 서은 양. 2007년 9월 13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 2007년 6월 16일.
사람 사는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원하며, 벚꽃 휘날리는 4월 5일에.
각주
¹⁾ 최규석 화백의 만화 〈100도〉에서 참조함.
³⁾ 유진 V. 데브스(Eugene V. Debs)의 1919년 법정 최후변론을 참조, 변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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